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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 워크웨이즈] 메쓰카멜,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구성된 중고참 신인 밴드의 자신감 넘친 출사표


글 송명하 | 사진 곽성아


국내 대중음악의 흐름 가운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서울 이외의 다른 지방에서 ‘신scene’이라고 부를 만큼 특색 있는 경향을 찾아보긴 힘들다. 대전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교통편이 발달하며 서울과 심리적인 거리를 줄인 대전은 유성이라는 관광특구의 영향으로 서울 밴드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음악 신 역시 서울의 그것에 귀속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특별한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국내 록 음악 마니아라면 대전이라는 지명과 함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몇몇 강성의 밴드를 주축으로 한 움직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 스래쉬메탈의 맹주로 활약하고 있는 마하트마Mahatma, 정통 메탈의 계보를 묵묵히 이어가는 뉴크Newk, 랩코어와 헤어메탈을 오갔던 락신Rocksinn, 2004 케이록챔피언십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힘을 보여줬던 뉴메탈 밴드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와 멜로딕 스피드메탈 밴드 헬리온Hellion과 같은 밴드는 전반적인 록 신의 흐름과 무관하게 변방에서 자생해 장르를 대표하는 위치로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메쓰카멜Methkamel은 마하트마의 데뷔앨범 [The Endless Struggle Against Time](2005)과 2집 [Perseverance](2007)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서진호와 잭 인 더 박스의 베이시스트 장현일이 2015년 결성한 밴드다.


주 포지션인 기타 외에 보컬까지 담당하고 있는 서진호는 그가 참여했던 마하트마의 음반에 기록한 기타 솔로 파트에서 알 수 있듯 스래쉬메탈 외에 정통 하드록이나 프로그레시브록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중추 신경을 흥분시키는 각성제methamphetamine와 서정파 아트록 밴드 카멜Camel의 독일어 표기 카멜kamel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밴드명은 이러한 그의 음악적 지향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성은 그대로 메쓰카멜의 음악에 녹아들었다. 메쓰카멜은 결성 후 몇 차례의 공연을 가졌지만, 서진호와 장현일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가 자리를 잡지 못하며 꾸준한 활동에 계속해서 제동이 걸렸다. 불안했던 라인업이 본 궤도에 올라온 건 2019년 박지온(기타)과 남철우(드럼)가 가입하면서다. 새로이 가입한 두 멤버는 헬리온 출신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전이라는 지명에 ‘메탈’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만들었던 주역들이 이제 메쓰카멜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다시 집결한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이들이 거쳤던 밴드의 이름을 기억한다고 스래쉬메탈, 뉴메탈, 멜로딕 스피드메탈이란 정형화된 장르를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헤비메탈이라는 틀 안에서 메쓰카멜은 보다 자유로운 접근을 택하고 있으니 말이다. 멤버들은 “정형화된 장르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자신들의 음악을 정의하고 있다.


데뷔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은 짧은 드럼의 필인에 얹히는 타이트한 기타 리프로 단숨에 청자를 긴장시키는 ‘Thin Ice’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이끌려 살아가야하는 레일 위의 삶, 살얼음판 같은 현실 속에 현혹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직선적인 진행에 담겼다. 갑작스런 브레이크, 도입부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하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템포의 전개, 적절히 치고 빠지는 악기의 솔로파트 등 이후 이어질 메쓰카멜의 음악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Wry Reality’는 풍자적 현실의 딜레마에 차라리 눈을 감으면 더 많은 게 보이고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일상의 넋두리를 담은 곡이다. 선이 뚜렷한 리프와 트윈 리드기타의 매력을 한껏 살린 솔로는 클래식록 애호가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만하며, 7분에 육박하는 음반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트랙이다. ‘99.9’는 완벽을 꿈꾸는 일부 인간들의 욕망에 관한 곡이다. 보컬이 그리는 멜로디라인은 어렵지 않으나 내레이션을 동반한 프록메탈 스타일의 서사적인 연주파트가 인상적이다. 


대곡 성향의 프록메탈 지향적인 메쓰카멜의 스타일은 ‘주기도문’을 의미하는 짧은 연주곡 ‘6.913’과 ‘20th Century’ 접속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앞선 곡들과는 달리 한글 가사를 가진 ‘20th Century’는 수많은 전쟁과 이별, 슬픔으로 점철된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내용은 다양한 효과 트랙의 적절한 사용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소프라노 보컬과 아이들의 코러스는 다분히 종교적인 뉘앙스를 풍기며 그 표현 영역을 청각에서 시각적 이미지로 확장시킨다. 메쓰카멜의 데뷔앨범은 2019년 7월에 시작된 음반의 녹음은 2020년 2월에 대부분 마무리됐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이 곡의 코러스에 참여할 아이들의 모집에 어려움이 있어 일정 자체가 늦춰졌다. 이 곡, 크게는 이 앨범에 기울인 밴드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보컬 파트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Redkamel’과 ‘Astrology’는 각각 원주민들의 땅을 가로챈 자본주의의 표본 같은 미국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예전 하늘의 별에 소원을 빌던 무지하고 맹목적인 믿음의 나약함에 대해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곡이다. ‘Plainmadness’에는 누군가는 광기어린 불평등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크게 본다면 지구라는 별을 타고 동등하게 여행 중인 평등한 사람들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단순한 듯 들리지만 곡의 일부를 스킵하고 듣는다면 전혀 다른 곡으로 느껴질 만큼 한 곡 안에서 변화무쌍한 진행을 보여주는 전개는 앞서 오프닝 트랙 ‘Thin Ice’에서 설명했던 메쓰카멜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Horizon End’는 바다 속 거대한 고래와 병 속 요정의 항해에 점점 따라붙는 바다 친구들의 동행으로 낙원의 길로 갈 듯 떠난 희망에 찬 여정에 대한 곡이다. 동화와 같은 내용과 달리 다소 무거운 진행을 보여주는 건 결국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다소 의외의 결말이 이어지는 까닭이다.


개인적으로 메쓰카멜의 음악은 결성 초기부터 공연을 통해 접해왔다. 솔직히 그 때 들었던 음악은 지금 음반에 수록된 결과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그 이야기들을 한 곡에 담으며 장황해지고 과하게 복잡해져, 전반적으로 정돈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렇게 본다면 때 결성 이후 데뷔앨범의 발매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밴드에게 있어서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속해서 곡에 통일감을 부여하고 다듬어 나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밴드는 조급해 하지 않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완성도 있는 음반을 만들기 위해 계획했던 파트를 빠트리지 않으며 전체적인 일정을 다시 조율했다.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최종 마스터링은 헤비메탈 전문 스튜디오인 스웨덴 파시네이션 스트리트 스튜디오Fascination Street Studio의 메인 엔지니어 옌스 보그렌Jens Bogren을 통해 진행했다. 오래도록 준비한 만큼 숙성된 결과를 담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구성된 중고참 신인 밴드의 자신감 넘친 출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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