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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터, 록의 르네상스기를 재현하는 호방하고 원초적인 하드록 밴드


글 송명하 | 사진 스켈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일반적으로 ‘화이트 앨범’으로 불리는 비틀스의 셀프타이틀 음반 수록곡 가운데 ‘Helter Skelter’라는 곡이 있다. 폴 매카트니의 가능한 시끄럽고 지저분한 소리를 만들려는 시도를 그대로 옮긴 이 곡은 이후 헤비메탈의 초기 생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팻 베나타, 머틀리 크루, 유투, 바우 와우, 오아시스 등 수많은 밴드의 커버버전은 이 노래 한 곡이 후대에 미친 영향력을 방증한다. 이번에 두 곡이 담긴 45회전 바이닐 싱글을 발표하는 밴드 스켈터 역시 ‘혼란, 당황, 난잡’ 등을 의미하는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밴드명을 착안했다. 


스켈터Skelter는 2014년 중반 결성된 스토너 록 밴드다. 멤버의 구성원 모두가 비틀스를 좋아하는 까닭에 망설임 없이 스켈터라는 이름을 짓게 됐다.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 역시 곡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호방하고 원초적인 하드록 사운드다. 임상일(보컬, 기타), 현준민(기타), 최준호(베이스) 그리고 손정현(드럼)으로 구성된 굳건한 4인조 라인업은 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한 곳을 바라보며 항해를 이어오고 있다. 보컬과 기타를 담당한 임상일은 재결성 들국화의 세션 기타리스트로도 잘 알려졌고, 최준호는 1990년대 초반 뮤즈에로스를 거친 베이시스트로, 스켈터 활동과 병행해서 윤두병이 결성한 차퍼스에서도 잠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또 한 명의 기타리스트 현준민 역시 어쿠스틱 듀오 애틱Attic 활동은 물론 많은 뮤지션의 라이브 세션과 작/편곡에 참여하는 등 멤버 전원의 탄탄한 기본기는 이번 음반이 물리적인 첫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잘 익어 숙성된 사운드를 빚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스켈터가 추구하는 음악은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초반 하드록을 뿌리로 하는 스토너 록 스타일이다. 임상일은 “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제한 없이 표현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가장 끌리는 분야가 올드스쿨 하드록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정식 발매되는 싱글에는 두 곡이 담겼다. 녹음 시에는 정교한 스텝 타임 레코딩보다 리듬 파트의 헤비함과 현장감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기타 녹음은 메사부기 마크4 앰프 특유의 크런치 질감과 레스폴 험버커 픽업의 묵직함을 살리려 노력했고, 베이스 역시 여러 베이스를 실험하며 가장 어울리는 톤을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드럼은 라이브 느낌의 재현을 위해 기본적으로 원테이크 녹음을 원칙으로 작업했고, 이러한 밴드의 의도는 수록된 두 곡에 확실한 음골로 기록됐다. 



‘Follow’는 임상일의 개인적이고 기이한 체험을 소재로 만든 곡이다. 한여름 새벽, 만취한 상태에서 맞닥트린 허상과 그 상황을 가사에 담고 느린 템포에 불길한 분위기를 더했다. 무심한 듯 묵직하게 내려 긋는 기타 리프와 주술을 외듯 시작하는 도입부 보컬의 음습함은 쉽사리 청자의 중심을 무너트린다. 기타 솔로는 리프 녹음과 달리 여러 플러그인을 이용해 잔뜩 취한 상황에서 난수표처럼 나열되는 의식으로 빙의한다. ‘Ordinary Life’ 역시 임상일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잠깐 동안의 정직원 경험과 음악을 하지 않는 친구들의 생활담을 토대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낸 곡으로, ‘Follow’에 비해 빠른 템포로 그루비함과 펑키함을 강조했다. 선이 뚜렷한 베이스 기타, 중반부 현란하게 펼쳐지는 기타 솔로 등 탄탄한 연주, 자유로운 추임새가 매력적이다. 두 곡 모두 롤러코스터를 타듯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청자의 감정을 조정하는 능력은 발군이다.


우리가 1970년대 초반 소위 ‘록 음악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기 음악을 찾아 듣는 이유는 막연히 추억에 기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당시 존재했던 어떤 한 밴드나 음악에 천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자유분방한 시절 음악 자체에 대한 동경도 커다란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다.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어가던 무렵, 뮤지션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그대로 음악이 되었다. 스켈터의 음악을 들으며 그런 느낌을 받은 건 나뿐일까. 치밀하게 계산되고 빈틈없이 꽉 짜인 음악도 좋지만, 기타의 현과 현 사이에 공간이 있고, 드럼의 탐과 탐 사이에 공간이 있듯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운드는 요즘처럼 숨 쉬는 일 조차 버거운 시대에 더 없는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 두 곡이 담긴 음반 한 장으로 섣불리 스켈터의 음악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건 무리다. 하지만 이어질 활동에 있어 기대감을 갖기엔 충분하다. 경력에 비해 디스코그래피가 아쉽지만 스켈터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싱글을 통한 신곡 발표와 유튜브 활동 등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꾸준히 쌓여 정식 음반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두 곡 만으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빨리 풀랭쓰의 정규 음반을 통해, 보다 긴 시간을 ‘혼란, 당황, 난잡’한 스켈터의 음악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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