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30% 아쉬운 인스트루멘틀리즘, 그래도 뮤즈인 까닭은?

MONTHLY ISSUE/ISSUE NO. 26



국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는 영국 음악은 몇몇 밴드로 압축돼 왔다. 또한 그 몇몇 밴드들은 브릿팝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졌다. 오아시스와 블러, 라디오헤드가 한데 몰려 하나의 취향군으로 엮였다. 마니아들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을 테지만, 미디어는 스페셜리스트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글 한명륜 | 사진제공 Warner Music


뮤즈(Muse)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사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도 등장하며 젊은 층의 문화 취향을 설명하는 장치로도 등장했고 내한공연도 성공리에 치렀을 만큼 잘 알려진 밴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뮤즈도 역시 ‘브릿팝’이다. 더군다나 근 몇 년 사이에 해외음악 세일즈가 급전직하하고 시장이 증발하다시피 하면서, 뮤즈를 영국을 원산지로 하는 음악 중에서 따로 분리해 들을 만한 리스너층의 재생산도 미미해져버렸다. 이런 상황을 한국만을 생각해 보자면 뮤즈의 이번 앨범 [Drones]에 나타는 밴드의 의도는 한층 더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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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