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토바Cotoba, コトバ는 한국 인디록 신에서 아직 그렇게 널리 유행되지는 않았던 매스록Math Rock을 표방하는 밴드다. 작년에 첫 EP [언어의 형태]를 발매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 음악에 관심이 있는 해외 음악 팬들에게도 긍정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원래는 직접 대면 인터뷰를 기획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사태로 인해 멤버들이 연초에 일본 라이브 하우스 공연을 마치고 온 후 건강상 문제는 없었지만 만약을 위해 스스로 ‘자가격리’를 택했기에 파라노이드는 리더 다프네를 통해서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내고 멤버들의 대답을 수합해 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1년간 4인조 됸쥬(보컬, 기타), 다프네(기타/프로듀서), 유페미아(베이스), 마커(드럼)로 활동했지만 최근 5번째 멤버 쥬나나(드럼)가 전역하여 본격 ‘2드럼 5인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의 역사와 음악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만나보자.
인터뷰 정리 김성환
록 매거진 파라노이드다.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서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어서 기쁘다. 코로나19 사태가 진행중인 이 상황에도 일본에서 예정된 공연을 진행하고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진행된 공연이었나.
역사 깊은 파라노이드와 대화하게 되어 대단히 영광이다. 오사카 역과 우메다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랜드마크 격인 고층 빌딩 스카이트리가 있고 그 앞에 위치한,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라이브 하우스 샹그리라Shangri-La다. 일본 내외의 밴드, 성우, 가수 등의 이벤트가 줄지은 인지도 높은 곳이다. 최근 대만 록 밴드 엘리펀트 짐Elephant Gym이 단독 공연을 열어 매진되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공연을 진행하는 자체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현재 멤버들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나.
작년부터 추진해오던 공연이었고, 기다려주신 관객들의 마음과 라이브하우스와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변경 없이 진행했다. 출국 전과 현지에서, 귀국 후 지속적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고 권장되는 수칙들을 철저히 지켰다. 현재 멤버들의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
바로 밴드의 과거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밴드 멤버들이 처음 모이게 된 것이 2018년 10월 경이라고 알고 있다. 각각의 멤버들은 서로 어떤 계기로 하나의 밴드로 뭉치자고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됸쥬: 2017년 할로윈 전날, 함께 길을 가던 중에 쥬나나가 “왜 됸쥬님은 밴드 안 해요? (됸쥬가 “같이 할 사람이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제가 할게요.”라고 했다. 다프네와는 음원과 공연 세션으로 작업하면서 의사소통 방식과 창작물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페미아는 쥬나나와 레니게이드The Renegade라는 팀을 하고 있었는데, 볼 때마다 연주와 퍼포먼스가 멋있어서 코토바를 결성하게 될 때 얼른 모셔왔다. 그리고 쥬나나의 제자인 마커를 을밀대에서 소개받았는데 좋은 사람이었다. 이 친구들이라면 즐겁게 작업하면서 멀리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프네: 됸쥬의 공연과 음원의 기타 세션으로 참가했던 이력이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밴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당시 드럼을 치던 쥬나나를 포함해 셋이서 밴드를 조직하는 것에 대해 의논했다. 애니송 밴드 콘셉트의 라이브클럽데이 공연 등을 준비하며 그것이 구체화 되었는데, 쥬나나는 입대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그의 제자인 마커를 소개해 주었다. 베이스는 됸쥬의 제안으로 유페미아가 합류하게 되었다.
유페미아: 2015년에 웨이앵커Weigh Anchor라는 프로그레시브메탈 밴드로 음악을 처음 시작했다. 가사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인스트루멘탈을 하는 팀이었다. 2017년 12월에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그 다음해 EBS 2018 하반기 헬로루키 예선을 통과했었는데, 일산 EBS 스페이스에서 진행되었던 라이브 오디션에서 탈락했다(합격했던 팀들 중에는 설SURL, 데카당 같은 팀들도 있었다). 나름 열심히 만든 음악이었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흔히 말하는 현자타임이 왔던 것 같다. 씁쓸함을 못 이겨 한동안 두문불출했었는데 그 때쯤 됸쥬에게서 함께 밴드를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었다. 확실한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시는 모습에 끌려서 수락했다. 첫 합주 때까지는 기타와 드럼 멤버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는데 가서 보니까 웬걸, 다 아는 사람들이더라.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했는데도 불구하고 금방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커: 정말 우연하게 이어진 인연으로, 처음 쥬나나의 소개로 됸쥬, 다프네와 함께 라이브클럽데이 공연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두 사람이 저에게 매스록 장르의 밴드를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활동하길 제안했다. 당시 내게는 생소한 장르였던 매스록을 거의 처음 접하였는데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하여 함께 하게 되었다.
쥬나나: 처음엔 됸쥬의 개인 곡 세션을 하는 팀을 다프네와 하다가, 입대를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밴드세트로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까운 동료들인 유페미아와 마커를 추천했고 멤버 모두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다가 전역 후 함께 활동하자는 제의를 받고 합류했다.
밴드 이름인 ‘코토바言葉’는 일본어로 ‘언어, 말’이란 의미다. 어떤 이유로 영어나 한국어 대신 일본어 어휘로 밴드명을 정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밴드 멤버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등 일본 문화에 매우 관심이 많은 영향인가.
다프네: 한국어로 세 글자이며, 어느 나라의 말로도 그대로 기재할 수 있고 발음하기 쉬운 어떤 팀명을 원했다. 그러다 ‘코토바’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일전에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여온 일반적인 송라이팅을 했지만, 어느 때 음성언어, 표기언어로 곡에 붙이는 것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언어를 통한 의미와 감정 전달보다는 형태와 구성, 구조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음성, 표기언어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해서 어떤 것을 전달하려는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시 말해 언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언어’라는 자체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에 됸쥬에게 이러한 의견을 전달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일본의 만화영화나 정서들은 공감 가는 바가 크다. 그러한 부분이 일본어 단어인 ‘코토바’ 를 팀명으로 정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됸쥬: 다프네를 제외한 4명은 다 서브컬처, 애니송 공연을 하면서 처음 만나긴 했지만 처음부터 “일본어 이름으로 하자!”라고 한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세 글자, 어느 나라에서도 기재와 발음이 쉬운 어떤 팀명까지는 미리 협의한 사항이고, 이후는 다프네가 시를 쓰기 때문에 그에게 맡겼다. 밴드로 모이면서 매스록이 발달한 일본 활동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코토바 라는 이름을 가져왔을 때 좋다고 했다.
프로필이나 일반적 밴드 소개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매스록’으로 정의하고 있다. 아직 이 개념에 익숙지 않은 록 팬들이나 독자들을 위해 코토바의 음악은 어떤 부분에서 매스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매스록 은 말 그대로 수학적인 어떤 음악으로, 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음악은 ‘하나, 둘, 셋, 넷’으로 셀 수 있는 4박인 경우가 많다. 매스록은 하나둘셋, 하나둘셋넷다섯, 하나-두울-셋넷하나둘셋 등으로 셀 수 있는 변박이 들어간 음악이다. 복잡한 리듬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패턴의 흥미로움과 그 패턴을 파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와도 비슷한 설명으로 들릴 수 있는데 두 음악은 기원이 다르기도 하고, 프로그레시브는 변박을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수단’으로써 사용하고, 매스록은 변박이 주는 그 느낌 자체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다. EP [언어의 형태]를 예로 들면, 첫 곡 ‘Odori’는 스트레이트하게 달리고 있지만 기타와 베이스가 하나의 마디 안에서 각자의 강세가 다르다거나, 달리다가 템포가 느려지며 전위적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부분도 매스록의 어떤 속성이다. 또한 ‘Oatmeal’은 드럼이 5박인데 기타, 베이스는 4박으로 연주하는 폴리리듬이다. ‘Frittata’는 그에 비해 일반적인 악곡이다. 1번 2번 곡을 들으신 분들의 휴식을 위한 4박곡이다. 대신 기타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며 매스록에 많이 등장하는 ‘박자 놀이’ 를 하고, 후반부의 마디가 불규칙하다. ‘소멸의 소실’은 11박으로 시작해 9박, 5박으로 구성된 마디들이 등장한다. 그 안에서 기타들의 온순하고 침착하게 아르페지오를 하며 이를 통해 곡의 다이내믹이 서서히 상승한다. CD에만 수록한 ‘여름의 낮’은 실물 음반을 구매해주신 분들을 위한 히든트랙으로, 코러스에서 변박 구성과 셔플리듬을 혼용하여 재미를 더한다.
매스록 계열로 내한공연 등으로 한국의 대중적 록 팬들에게 어느 정도는 소개되고 알려졌던 팀으로 배틀즈The Battles나 일본의 토Toe, 애시드만Acidman, 트리콧Tricot, 대만 밴드 엘리펀트 짐 등이 개인적으로 먼저 떠오른다. 밴드 멤버들은 해당계열 밴드이든, 그 외 영역의 밴드이든 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어떤 해외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공통: 토, 트리콧, 키노코 테이코쿠Kinoko Teikoku. 이 세 팀이 코토바 음악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쳤다. 토의 약간은 침잠하지만 담담한, 그러면서도 폭발적인 분출, 키노코의 서글프면서도 날카로운 비명 같은 기타와 악곡. 트리콧은 이 2팀 영역 안에 있는 어떠한 또 다른 음악이고, 이것들의 좋은 면들을 코토바의 악곡에 담고 싶었다. 이 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온스테이지 ‘Melon’ 영상에서 됸쥬가 트리콧 티셔츠를, 다프네가 토 티셔츠를 입고 있다.
됸쥬: 노래를 메인으로 하지 않는 지점과 라이브에서 석고대죄 액션을 하는 부분에서 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트리콧은 세계 최고의 밴드다. 세토우Cetow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라이트LITE도 많이 듣고 있다.
다프네: 토, 애시드먼, 트리콧, 앨리펀트짐을 많이 들었다.
유페미아: 매스록 보다는 드림 시어터를 위시한 프로그레시브메탈이나 메탈리카Metallica,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같은 헤비메탈, 하드록, 그리고 펑크 등을 더 많이 듣고 자랐다. 지금은 좋아하는, 좋은 음악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발굴해서 듣고 있다.
마커: 일본 공연장에서 함께 했던 다른 팀들의 음악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수이츄스피카水中スピーカー, 사운드 디자인 웍스Sound Design Works, 아루 이키모노 노 키로쿠ある生き物の記録 등이다.
쥬나나: 트리콧과 토를 기반으로 하는 매스록을 좋아하던 다프네와, 프로그레시브메탈 밴드를 하던 유페미아를 주축으로 변박적 곡을 만드는 듯 싶더니 이렇게 엄청난 곡들을 만들어낼 줄 몰랐다.
음반을 발표하기 이전인 2019년 초부터 밴드가 공연 활동을 하는 소식 등을 SNS로 알고 있긴 했다. 결성 이후로 보면 꽤 빠르게 대외활동을 시작했고 첫 EP의 제작도 2019년 4월부터 진행을 시작했다고 하니 꽤 일사천리로 팀워크가 다져진 것 같다. 앨범 작업에서 다프네가 프로듀서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에 각자 파트를 연주하는 것 외에 어떤 음악적 아이디어에 대한, 그 외적인 부분의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통: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밝히던 각자의 역할은 됸쥬(SNS담당, 금발 1) / 다프네(프로듀서, 금발 2) / 유페미아(센터, 장발) / 마커(젊은이) / 쥬나나(지금 여기에 없지만 곧 등장)였는데 됸쥬의 머리가 코스프레 때문에 어두워졌고 마커가 탈색을 했고 쥬나나가 전역을 해서 조만간 대대적인 역할 변동이 있을 예정이다.
됸쥬: 나, 다프네, 유페미아가 음악 활동 경험이 있어서 일을 진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앨범을 내고 싶으면 언제부터 어떤 순으로 작업을 해야 하고, 공연이 하고 싶으면 어떻게 조율하면 되는지 등에서 덜 헤맸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 같다. 외적인 부분에서는 각 이벤트 때 멤버들의 의상 매입을 담당하고 있다. 합주에서는 “이 부분 박자를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때?” 역이다.
다프네: 앨범 작업에 착수하기 전 상당히 빠르게 내가 주도해서 DAW로 곡을 만들었고 이를 함께 편곡했다. EP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유페미아가 나에게 프로듀서를 제안했다. 음악적, 이미지적, 대외적인 성향과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이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페미아와 마커는 음악이론과 연주를 전공하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박식하다. 그래서 이론적 부분에서 조언을 받는다. 3월 17일에 전역하는 쥬나나도 연주와 이론에 레벨이 높아 도움을 준다. 저는 의외성이 높은 모티브를 만든다고 멤버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데, 됸쥬도 그에 못지않다. 연주력과 좋은 미감, 비즈니스 감각으로 기여한다. 또한 일본어 레벨이 높아 일본 쪽과의 비즈니스를 전담한다. 그들에게 항상 감사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난 홍대에 나뒹구는 낙엽이 되었을 것이다.
유페미아: 앨범 준비에서 내가 다프네에게 프로듀서를 맡을 것을 제안했다. 음악에서의 프로듀서란 음반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각자가 서로의 의견만을 내세우다 보면 도리어 성장 속도를 더디게 하고 음악이 중구난방이 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밴드 멤버 모두가 만드는 음악이지만, 방향키를 잡을 사람이 필요했고 다프네가 그 적임자였다. 합주를 하면서 공동으로 곡을 만들어갈 때도 있지만, 다프네가 아이디어 스케치를 가져오면 그걸 바탕으로 곡을 전개할 때도 있다. 나는 그저 합주하면서 만들어지는 드러밍에 베이스를 끼워 넣을 뿐이다. 가끔 리듬이나 하모니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테크니컬한 연주를 좋아하고 즐기지만 코토바의 음악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마커: 드럼 외에도 다른 파트의 악기를 알아가며 어떤 것을 연주하는지, 어떤 사운드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여러 의견을 전하여 최대한의 도움이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밖에 다른 멤버들이 궁금해 하는 리듬, 박자 등을 분석해서 알려주기도 한다.
쥬나나: 군대에 있는 와중에도 멤버들이 만들고 있는 곡들을 메일로 보내줬다. 박자나 곡의 분위기, 드럼 플레잉에 대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아이디어 제시를 했는데, 이미 충분히 잘 만들어져있어서 사실 손 댈 것이 많지 않았다(웃음).
첫 EP [언어의 형태]가 완성되는 데는 전부 얼마나 걸렸나. 그리고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적 특성상 멤버들 각각의 연주의 구상이 꽤 중요할 것 같은데, 하나의 트랙이 스튜디오에서 완성되기 위해 미리 완벽한 합주로 곡을 다 정리해놓고 레코딩을 진행했나. 아니면 뼈대만 잡고 스튜디오 내에서 뭔가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추가되는 형식이었나.
다프네: 4월에 녹음에 들어가서 7월에 음원 작업은 완료되었다. 그 이후 8월 29일 발매까지 앨범 재킷 디자인(실물 재킷을 보면 알겠지만,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표현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프레싱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타이트하게 진행했고 상당 부분 계획대로 되었다. 앨범 사운드에 대한 구상은 이미 머릿속에 다 있었다. 각자의 연주는 모두 확정한 상태였고, 가이드를 치밀하게 만들면서 그림을 조정했다. 물론 녹음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떠올려서 더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레코딩에서는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각자가 즐겁고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연주를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정갈하게 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후 부분은 치열한 믹싱과 마스터링으로 완성했다.
코토바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게 하나 있다. 기존에 솔로로 먼저 활동을 하고 있었던 됸쥬의 보컬 역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하나의 ‘악기’처럼 구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그룹의 음악적 기조에 따른 ‘계획적’ 결과물로 봐도 될까. 프로듀서와 보컬 당사자의 입장에서 답을 들어보고 싶다.
다프네: 정확하다. 애초에 보컬이 중심이 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계획적 결과물이다. 보컬이 중심이 되는 음악은 어디에나 있다. 보컬은 보컬이기 때문에 주목받은 자리가 마련되어있고, 기타도 마찬가지다. 코토바에서는 리듬 파트의 역동성이 중요하다. 그들도 자신의 좋은 연주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주목하길 바랐다. 믹싱에 가장 공을 들인 건 사실 드럼이다.
됸쥬: 계획적인 결과물이 맞고, 앞으로도 유지해갈 생각이다. 음악적으로 인스트루멘탈 밴드에 가깝고 싶기도 했고, 보컬의 비중이 늘어나면 다양한 이유로 ‘보컬이 쨘 있고 뒤에 있는 연주자들’ 포맷으로 여겨지기 쉬울 것 같았다. 코토바는 다들 훌륭한 음악인이고 연주자이기 때문에 나의 백밴드로 보이게 하는 일은 모든 측면에서 최대한 피하고 싶다.
첫 트랙 ‘Odori’의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랬고, 음반의 1번 트랙부터 3번 트랙까지 모두 ‘음식’과 관련이 있는 제목을 가졌다. 다 음식에서 영감을 떠올린 것이라 그런 것인가. 각 곡의 제목들이 그렇게 선택된 이유가 궁금하다.
다프네: 곡을 만들어 놓고 이름을 음식으로 붙였다. 곡을 듣다보니 어떤 음식의 메이킹 비디오 뮤비를 상상해보게 되었고, 그것이 재미있고 신선했다. ‘Oatmeal’은 기타 리프가 동글동글하고, 드럼이 변박으로 가는 점에서 귀리가 화면 안을 돌아다니는 장면 같은 것이 상상되기도 했고, 그것이 귀리밥이 되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Frittata’는 이탈리안 오믈렛으로 계란과 여러 채소가 들어가는 요리이다. 그것을 들으며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과정들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처음에는 앨범 타이틀도 ‘미식가’로 하려했다. ‘소멸의 소실’이 음식 이름이 아니어서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푸드 타이틀 앨범을 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밴드의 음악이 다른 록 밴드들과 비교해 연주와 실험성이 강조되는 면이 있어서 일면 ‘대곡’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생각보다 각 트랙의 러닝타임이 그리 길지는 않은 것 같다. 이후에는 좀 더 드라마틱하게 긴 작품들을 만들 생각은 있는지 궁금하다.
됸쥬: 내 노래 중 ‘風化’가 거의 10분이다. 코토바에서는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하자 고 하면 반대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엑스-저팬X-Japan의 [Art Of Life] 앨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프네: 나는 대곡 욕심이 그리 없다. 긴 곡을 좋아하지 않는다. 확실하고 설득력 있는 너무 길지 않는 곡을 선호한다. 하지만 멤버들은 곡을 길게 만들고 싶어 하는 의견들을 내비치곤 한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고 있다. 음악이라는 것도 사실 구성의 반복과 조합의 모음이다. 곡의 구성과 정서가 길게 만들 만한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가능할 것 같다.
유페미아: 그쯤 되면 거의 프로그레시브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이전에 프로그레시브메탈을 하면서 길이가 긴 대곡을 많이 연주했다. 1곡당 길이도 6~7분을 넘어가는데 그런 트랙들이 앞뒤로 붙어있는 식이었고, 그 곡들에는 길이에 맞는 서사가 담겨있었다. 만약 우리가 곡을 만들면서 장대한 서사를 기획한다면 곡 길이도 그에 비례해서 길어질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다른 멤버들이 그럴 생각이 있어야겠지. 하지만 역시 대곡은 피곤하다.
마커: 기회가 된다면 다른 파트의 악기도 추가하여 8분가량의 곡을 만들어 볼 생각이 있다.
쥬나나: 곡 구성에서의 드라마틱보다는 소리의 실험에 신경 쓰고 싶다. 각종 사운드메이킹적인 퍼커션과 투드럼을 이용한 플레잉을 정밀하게 조합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첫 EP가 발매된 이후 음악 관계자들이나 록 팬들의 반응이 꽤 긍정적이고 좋았다. 특히 해외의 리스너들 중에서도 밴드의 음악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보인다. 첫 EP에 대해서 멤버들 각각은 어떻게 결과물에 대해 자평하고 싶은가.
됸쥬: 매스록을 팝적으로 풀어내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그 형식 안에 ‘말로 표현하기에는 말이 부족한’ 감정을 담아냈다. 주변에 추천하기 용이한 매스록 입문편.
다프네: [언어의 형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이 앨범은 코토바에서 앞으로 할 어떤 음악들의 카테고리들을, 혹은 우리가 내놓을 ‘언어’ 들을 간단하게 소개한 것이다. 음성과 국적의 언어에 갇히면 그 나라 언어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것에 속박당하는 느낌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성언어를 상당히 배제하고 곡의 제목과 악곡으로 음악을 소개한 이 앨범에 만족한다. 국적의 언어에 얽매이지 않은 공감각적 결과물이다.
유페미아: 언제나 레코딩할 때 다르고 첫 결과물이 나왔을 때 다르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들어보면 또 다르다. 모든 때에 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역시 만족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론 음반 하나에 딱히 거대한 의미를 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우선일 뿐이다.
마커: 첫 EP를 만들면서 아쉬운 게 정말 많았다. 스스로 아직 실력이 부족한 점도 많고 경험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했다. 지금도 음원을 들으면서 할 수 있으면 다시 고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번 일을 경험으로 쌓고 더 노력하여 완성도 있는 음원을 만들 것이다.
쥬나나: 이번 EP는 송메이커보다 리스너 입장인데, 한국에서는 나오기 힘든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음악이 나온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각 멤버가 대학 전공을 통해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님에도, 음악적 뉘앙스와 변박적인 실험을 하는 뮤지션이 적은 지역에서 이런 앨범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사막에 오아시스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라 표현하고 싶다. 아직은 레퍼런스로 하고 있는 팀들이 연상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앞으로 더 발전된 음악을 만들 것이라 자신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여러 번 공연을 해왔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공연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라이브 무대에서는 아직 음반이나 음원으로 소개되지 않은 여러 곡을 함께 들을 수 있는데, 그 ‘음반 미공개곡’들은 언제쯤 음반이나 음원으로 만날 수 있을까.
공통: 길고 멀리 생각하고 있다. 천천히 계속 나올 것이다. [언어의 형태]는 극(極) 초반의 곡 모음일 만큼 활동한 기간에 비해 쌓인 곡이 많고, 새로운 음원을 제작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새로운 곡을 계속 만든다. 6월 말 발매를 예정하고 준비 중인 다음 EP로 약간은 해소 되지 않을까 생각은 들지만, 미공개곡은 역시 공연장에서 들어주시면 기쁠 것이다. 잘 부탁드린다.
그 가운데 작년 말에 일단 ‘Loss’가 싱글로 발표되었다. 같은 곡을 한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으로 동시에 공개했는데, 클럽 공연들을 넘어서 일본 음악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 또는 목표를 갖고 있는가.
다프네: 맞다. 일본 록 신에 중요한 음악가로서 그들과 겨루는 것이 이 밴드의 목표중 하나다. 집중해서 공연하고 있는 라이브하우스들과 신뢰를 쌓고 있고, 이미 일본의 매스록 관계자들과 여러 콘택트가 있었다. 좋은 소식들로 인사드리고 싶다. 아직 1년 했을 뿐이다.
됸쥬: 싱어 송 라이터 때도 그랬지만 가사를 한영일 3가지로 써두곤 한다.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언어가 그렇게 3개라서 그렇고, 다른 외국어도 익혀서 가능한 여러 나라의 말로 가사를 쓰고 싶다. 보아BoA를 비롯한 뮤지션들, 아이돌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의 노래하고 외국을 오가며 활약하는 것이 멋져보였고 그 마음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다. 일본, 특히 칸사이와 교토 쪽에는 매스록, 인스트루멘탈 밴드의 신이 오랜 시간동안 형성되어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가 발달한 곳으로 직접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같은 이유에서 태국과 홍콩 등에도 진출하고 싶다.
EP의 곡들만으로는 매우 한정될 것 같아서, 밴드가 그간 무대에서 연주했던 자작곡들 가운데 멤버별로 각각 어떤 곡을 가장 애정하고 있는지 한 곡씩만 골라 그 이유까지 답해준다면.
됸쥬: ‘소멸의 소실’. 잘 만들었다. 매스록 기타 리프 연주 입문용으로도 훌륭하다. 내가 평소에 겪는 정서와 닮았다.
다프네: 최근 온스테이지에 공개한 ‘Reyn’을 애정한다. 온스테이지에서의 연주와 다른 편곡을 최근 완성했는데, 이 버전을 다음 앨범에 실을 예정이다. 새로운 버전은 온스테이지 버전의 확장팩 같은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기대하는 중이다(됸쥬: 다프네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해서 확장팩이란 단어를 쓴 듯하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유페미아: ‘Melon’을 가장 좋아한다. 이 곡의 본래 타이틀은 됸쥬와 다프네가 2인조로 일본 공연에 다녀오면서 선물로 사온 과자의 상표를 그대로 붙인 ‘유바리 메론’이었는데, 이게 등록상표라서 차마 사용하지는 못하고 ‘메론’이라고만 하기로 했다. 유바리는 홋카이도 지방 소도시의 이름으로 유바리 메론은 그곳의 특산품이다. 아마 코토바의 음악 중에서 가장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은 곡이지 싶다. 가장 차분하게 시작해서 가장 처절하게 달려 나간다. 그래서 좋아한다.
마커: 드럼파트인 내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곡은 ‘Reyn’이다. 합주 중에 문득 생각난 복잡한 리듬을 유페미아와 짤막하게 합주를 하여 만든 곡이다. 정말 복잡한 박자와 연주하기도 힘든 리듬과 속도, 완성도 있는 구성으로 다른 곡들보다 비교적 애정이 담겨있다. 아무래도 즉흥적으로 만든 것 치고는 정말 퀄리티 있는 곡을 만들어서 그런것 같다.
쥬나나: 휴가 나와서 합주실에 놀러갔을 때 처음 들었던 ‘Reyn’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인트로부터 귀에 꽂히는 기타의 화음 라인과 16비트단위로 쪼개는 변박 구성, 됸쥬의 서정적인 목소리로 표현되는 멜로디와 가사 내용, 전체 곡을 관통하는 송폼의 탄탄함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명곡이다.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으로, 특히 한국과 일본이 진정되어야 다시 활발한 활동이 가능할 것 같은데, 2020년의 코토바의 활동 계획, 아니면 꼭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처음 계획보다는 분명 밀리겠지만) 말해준다면.
공통: 영미권과 아시아의 매스록 팬들에게 어필하고 투어를 가는 것,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고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는 것, 2드럼 체제에서 각 곡에 대한 완벽한 송폼과 플레잉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프네: 좋은 EP와 싱글을 내는 것이 목표이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 듣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고, 그런 음악을 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매스록은 가장 밴드답고 솔직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하지만 그 정서는 인간적이며 본질적이다. 어찌됐든 좋은, 만족스러운, 듣는 사람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음악을 만들고자 한다.
마커: 록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가는 것.
쥬나나: 인터넷 상에서의 활동을 확대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코토바의 팬들과 파라노이드 독자들에게 인사와 당부의 말씀 부탁한다.
공통: 우리가 스스로 즐거워서 만든 음악을 여러분들께서 좋아해주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계속해서 즐겁게 창작하고 즐겁게 들려드리고 즐겁게 보여주고 싶다. 함께 즐거워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고맙다.
다프네: 항상 건강하시기만을 바란다. 건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시지 않길 바란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항상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