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상 ‘Underdog’은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자리에서만 머물 확률이 높은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해당 명사를 팀명으로 택한 4인조 밴드 언더독(Underdog)은 외려 승률을 보여준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LG 트윈스 출신 ‘전설의 투수’ 이상훈을 필두로 결성된 언더독은 슈퍼밴드의 성격이 짙다. 이들은 음악에 있어 초심을 역설한다. 그런데 초심이라는 건 내려갈 데조차 없는 혹은 애써 올라갈 곳을 찾지 않는 순간에 다시 피어난다. 밴드 언더독은 그러한 진정성과 밴드 본연의 낭만을 견지하며 움직이고 있다. 그런 그들을 서울 창전동의 레코드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인터뷰, 정리 허희필
록 매거진 <파라노이드>다. 이상훈이 왓(What) 활동의 재개를 알리며 반갑게 복귀하였는데, 연이어 언더독을 결성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언더독은 일시적인 프로젝트인가, 아니면 정식 밴드로 보아야 하는가.
이상훈 밴드를 두 개 더 하려 했는데, 왓 때문에 해체가 되었고 왓을 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근홍이를 지난 여름에 이태원에서 공연할 때 직접 보았는데 그냥 끌렸다. 이 보컬 옆에서 기타를 치면 재밌을 거 같다 싶었다. 원래 같이 하고 있었던 베이스인 민규한테 이야기하니까 바로 좋다 하였고, 대구에 있던 21년 지기 친구이자 팀의 리더인 현규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러이러한 팀을 만들려 한다고 설명하고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수락이 떨어져서 만들어졌다. 당연히 언더독은 정식 밴드다. 여기에 사활을 걸었으니까.
박근홍 다 때려 치고 언더독만 하고 있으니까.
이상훈 나는 개인적으로 언더독 말고 하는 게 없다.
EP [Underdog]은 결성 후 비교적 발 빠르게 완성되었다. 4곡이지만 임팩트가 상당한데, 전반적인 작업 과정이 어땠나. 음반에 바코드가 따로 있지 않은데 정식 유통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도 듣고 싶다.
이상훈 작업 과정은... 곡이 일단 있다면, 현규가 드럼을 먼저 치고 가이드를 한다. 그리고 민규가 알아서 베이스를 쳐서 입혀오고 미디 작업을 내가 못해서 내 작업실에서 기타를 치고 민규가 녹음을 받아준다. 그렇게 드럼, 기타, 베이스만 넣어서 근홍이에게 작업물을 넘겼더니 하루 만에 불러왔다. 딱 하루 만에 불러 만들어 들려줬는데, 모두가 토를 다는 부분 없이 다 좋다며 빨리 내자고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던 건, 녹음했다가 여기서 이런 걸 넣고 싶고 드럼이 이랬으면 좋고 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다. 기준을 딱히 세워 놓을 필요 없이 현재 우리 상황에 따라 있는 대로 가자하여, 이번 앨범이 빠르게 나왔다.
박근홍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런 게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해냈다. 작업을 ‘빡세게’ 해도 아쉬움은 늘 생기니까. 웬만한 밴드나 개별 뮤지션들 경우에 바코드를 찍어서 유통하면 유통비가 나가게 된다. 우리 앨범이 오프라인에선 10,000원, 온라인에선 택배비를 포함하여 15,000원이다. 그런데 유통비를 입히면 4~5,000원이 나가는데 그러느니 어차피 오프라인 매장에 있다 하여 많이 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CDP도 없고 어차피 기념품인데 굳이 이걸 정식 유통할 필요 있겠느냐 싶어서 발로 뛰며 팔고 있다.
이상훈 요새는 곡을 음원으로만 내는데, 우리가 이야기한 건 그건 그것대로 내고 우리가 들고 다녀 팔기 위할 만큼만 하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클럽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으니 일종의 ‘얼굴’ 개념으로 만들었다. 팔릴 때도 있고 안 팔릴 때도 있겠지만 그게 밴드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박근홍 앨범이 밴드의 명함이니까.
장민규 CD라는 매체 자체가 바뀐 거 같다. 우리 공연을 보러온 분들이 기억하는 매체로서의 성격이랄까.
이상훈 재미있게 덧붙이자면 CD를 넣어서 들을 곳이 많이 없지만 그럼에도 찾아보면 있다. CD를 듣는 맛도 있지 않나. 이걸 팔 때 강매로 팔 경우에도 CD 좀 사달라고했을 때 “들을 데가 없다”라고 하면 “다른 용도로라도 써 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 CD를 취급하면서 나를 한 번 더 생각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이야기한다. 기억의 매체라는 측면이라는 의미도 있다.
박근홍 우리 팀에는 과거의 스포츠 슈퍼스타가 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CD를 팔고 계셔서(일동 웃음), 내가 최근 10년 간 했던 밴드 중에 앨범을 많이 판 것 같다. 내 입장에선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상훈 우리가 작업하고, 먹고 다니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비용을 많이 뽑았다. 앨범이 만들어질 때는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고, 음 하나가 들어가더라도 다 같은 곡이기에 작사, 작곡, 편곡이 모두의 명의로 되어 있다.
박근홍 밴드는 작곡가가 따로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멤버 하나가 곡을 만들어온다고 해봤자 기존 작곡가들처럼 미디로 다 찍어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기본 아이디어나 리프 정도 가져오면 어차피 나머지 멤버가 그걸 채워주어야 하는 식인 거다. 심지어 멤버 하나가 다 찍어왔다고 하고 이 대목만 치라고 해도, 나머지 멤버가 자신의 에고(Ego)를 누르고 테이크를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밴드를 한다면 전체 작사, 작곡에 있어 1/N 크레디트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상훈 누가 메인 리프나 메인 멜로디를 갖고 있어도 밴드 멤버가 없다면 완성될 수가 없는 거니까.
말했다시피 크레디트엔 프로듀싱 자체가 언더독 명의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도 가사나 작곡에 있어 모두가 분담하는 와중에 각자 주력한 부분이 있다면.
박근홍 사실 노래 자체는 상훈이형과 민규가, 곡을 빨리 내야 하니까 가지고 있는 곡에 뼈대를 두고 우리가 입히는 식으로 갔다. 보컬은 내가 하니까. 그리고 상훈이 형에게 있어 간과 되는 게, 뛰어난 기타리스트지만 엄청난 보컬이란 점이다. ‘Caruso’를 항상 부르면서 목청을 자랑하고... 그렇게 훌륭한 보컬인데 이렇듯 형이 전에 부른 보컬로는 똑같이 할 수 없어서, 나름대로 바꿔서 작업을 하였다. 전반적인 믹싱이라든가 사운드 밸런스는 민규가 도맡고 녹음 역시 보컬은 내가 따로 했지만 세션 녹음은 전체적으로 민규가 지휘하였다.
이상훈 개인적으로 원했던 것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멤버로 된 이유가 이들하고 같이 하면 아무거나 다 해도 되겠다 싶었다. 쉽게 말해 길거리 공연도 나고, 뽕짝을 하는 등 무얼 해도 되는 멤버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모였고, 녹음을 하다 보니 드럼으로 시작해서 파일을 들어보면 정말 토 다는 게 없다. 기타, 베이스, 보컬도 그렇다. 별 게 없다. 이거 됐다. 여기에서 믹싱과 마스터링만 조금 하면 괜찮아지겠고, 이펙트나 볼륨만 집어넣고 하면 되겠다 해서 된 건데 바로 딱 떨어졌다. 그게 밴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가사가 똑같다, 어디가 어떻다 하는 식으로 레퍼런스 따져가며 하기 싫은 거다. 한 번 녹음헀는데 성에 안 차서 다시 지하실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거다.
박근홍 큰 기대는 안 했다. 기대한 만큼만 나왔다(단체 웃음).
이상훈 음악 이야기할 땐 사실 야구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그걸 떠날 수 없는 거니 해본다. 아무리 20년 동안 밴드 생활을 하고 다녀도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점도 있지만... 야구엔 무심투(필자 주: 투수가 볼을 던질 때 아무런 감정과 표정의 움직임 없이 행하는 투구를 지칭한다)가 있다. 투수가 붙는다. 조계현(해태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등에서 활동한 전직 투수)이랑 붙었다. 이 형이 공을 무지하게 잘 던진다. 경기가 있는 날 만나서 “형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을 던지십니까?” 물어보면 “야, 그걸 어떻게 생각하냐?” 라는 답이 돌아오는데, 사실 음악이나 스포츠, 인생 등 모든 삶의 영역이 다 똑같다. 그냥 자기 혼을 담아서 하다 보면 자기 것이 생기는 거지 이렇게 해야지 결심하고 하면 다른 게 생긴다.
박근홍 좀 이른 이야기 같긴 한데, 알다시피 언더독 직전의 밴드 인터뷰도 하였고, 여러 밴드를 옮겨 다니면서 생각한 건 이런 거다. 밴드를 하는데 이 친구는 나랑 음악적으로 이게 안 맞고 저게 안 맞네 느낄 때가 있다. 밴드를 통제하려 했던 건 없었다. 사실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거나 음악적으로 모든 걸 책임진다던가 했다면 멤버들을 갈구어서 내게 맞추어라 했겠지만 그런 게 아니었고, 단지 성에 안 찬다 싶으면 절 싫으면 중 떠나듯 그냥 맞는 사람을 만나자 해서 20여 년을 떠돌아 다녔던 것 같다. 이제 와 생각이 드는 건 지금 저니맨(Journeyman)을 하면서 결국 나하고 같이 하는 멤버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들한테 인정을 해주길 바랐던 것들도 떠올랐다. 그러던 때에 마침 상훈이 형이 언더독을 제의한 거다. 물론 내 마음에 성이 안 차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의 멤버라면 알아서 자기가 각자 멤버가 30년씩 쌓아온 경력이 있지 않은가. 비록 상훈이 형은 22년 밖에 안 되어서 발렌타인(Ballantine) 30년산이 되기엔 8년 더 묵혀야 되지만(웃음), 어쨌든 이 형은 일본과 미국에서 연주를 하고 오셨기 때문에 그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나의 자아를 버리고 이 형이 어떻게 뭔가를 해주겠지 싶었다. 그게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기교적으로 엄청 잘 한다 이런 건 없겠지만 우리가 생각해 둔, 무언가 보증되는 영역의 음악이 있다는 생각이 든거다. 그런 식으로 밴드 멤버들을 마음 속으로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생겼다. 무얼 하자 그러면 “내일 나 부산에 공연하고 싶은데?” 하면 “그럼 가자” 이런 거다. 밴드도 돈 한 푼 안 된다면서 부산 가면 뭐 하냐, 하던 거 또 하는 거 아니냐 싶은 마음에서 무언가를 저울질만 하고 음악 작업만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흐르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활동들에 있어서도 아무래도 언더독은 신인 밴드다 보니 우리들로서 주어진 기회라든가 도전을 회피하지 않는 면이 큰 거다.
이상훈 언더독을 하면서 고마운 게 있다. 아무리 팀으로 앨범을 몇 개씩 내더라도 그동안 해왔던 발자취가 있다. 어쨌든 기타, 보컬인데 기타를 쳐봤자 얼마나 쳤겠는가. 4인조라 했을 때 기타는 나인데, 솔로로서 메인 기타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모이자마자 한 달 뒤에 공연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15곡 정도를 카피로 가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은 저질러놨지만 두려웠다. 원 맨 기타가 될까? 그럼에도 해 봐야겠다 싶어서 지하실에서 연습도 하였다. 굳이 내가 말을 안 해도 어떤 마음인지 나 스스로는 몰랐겠지만 기타가 나라는 걸 멤버들이 같이 팀을 한다는 맥락에서 믿는다는 부분이 고마웠다. 그런 마음에 더 연습하고 조금 이상하면 다시 주구장창 한다. 됐다 안됐다 할 때가 있지만, 민규한테 물어봤다. 내가 원 기타 되겠냐고. 그런데 민규가 그냥 하면 되죠 말을 했을 때 그 말 안에는 큰 게 들어있었다고 느낀다. 다른 멤버의 경우도 현규 같은 경우엔 아프리카 밴드에서도 찬조 식으로 내가 리듬 기타를 맡아 단독 공연을 한 적도 있다. 아무튼 흔쾌히 해준다고 하여 더 고마운 마음에 더 기타도 열심히 치게 된다.
박근홍 기타 계에 (김)태원 형이 있다면, 드럼 계엔 현규 형이 있다. 드럼계의 사관학교다(일동 웃음).
정현규 내가 리더이자 음악을 만들어 왔지 않은가. 실은 내가 평소에 해봤거나 들어왔던 장르는 아니었기에 처음엔 힘들었고 지금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중이다. 이렇게 하며 느끼는 게 예전에는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점이 있었지만 요즘은 내가 꽂혀서 무언가 하고 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거다. 그래서 나를 받아준 언더독 멤버들에게 감사하다.
이상훈 내 눈엔 현규가 가장 뛰어났다. 모든 면에서
박근홍 얼터너티브 장르를 치는 분들이 음악 장르에 맞게 좀 회의적이다. 장르에 따른 뮤지션들 특성이 있잖나.
이상훈 현규는 아프리카 밴드 음악만 계속 해왔다. 그리고 공연을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하다 보니 나 개인으로서도 들리는 게 있고 보이는 게 있는데, 거기서 우리 팀의 현황을 알 수 있다. 그걸 현규에게도 민규에게도 근홍에게도 얘기하고 내 스스로에게도 얘기한다. 이런 것들이 금방 수용된다. 연습이 필요하다 싶어 연습을 빡세게 한 적 있는데 서로 나름 지적질 아닌 지적질을 해가며 작업했는데, 그걸 서로 다 수용하고 바로 공연을 하러 갔다. 그리고 연주를 하는데 너무 편하고 너무 블루지하였다. 역시 드럼이 뒤에서 박자를 쪼개면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이런 걸 바로 맞춰주는 현규의 능력 같은 게 대단한 거다. 그래서 더 마음이 열린 거다.
정현규 확실히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거 같다.
박근홍 이런 식으로 소통하는 게 크라잉 넛(Crying Nut) 형들처럼 동년배라면 서로 지적질하고 주먹질하면서 몸으로 소통하는데, 멤버끼리의 연차가 쌓이고, 나이도 경력도 다르면 그게 잘 안 된다.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그런데 언더독은 다같이 나이 들어가는 처지지만, 거기에 있어서만큼은 열려있고 기본적인 마인드를 장착하여 간다는 상태다. 그런 점이 나로서는 처음 겪는 부분들인지라 그런 게 좋다.
이상훈 그런 부분들이 다 잘되진 않겠지만 사실 고름은 바로 짜줘야 맞다. 고름을 갖고 있다면 나중에 짤 때 아프다. 맨 처음 생길 때 아무렇지 않게 짜면 되는 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기타 사운드가 근홍이 목소리랑 맞는 건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모였을 때 잠깐 까먹더라도 내가 사운드에 고민이 있는데 괜찮은지 물어본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말을 더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고 그리하여 노력을 하게 된다. 사람이 완벽한 게 어디 있겠는가.
재킷 이미지는 어떻게 담았는지도 듣고 싶다.
이상훈 재킷을 만들려면 돈 주고 제작해야 하는데, 가만 보니 근홍이가 그런 능력이 있었다. 재킷을 만드는 능력이라기보다는 상상하고 헤아리는 능력이 있다. 단톡방에 지금의 앨범 자켓 이미지가 올라왔을 때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멤버 전원이 다 좋으니 이걸로 하자 해서 완성됐다. 오히려 만든 사람이 더 고민해서 나온 이미지다. 이것도 곡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박근홍 AI 시대가 너무 고맙다(웃음).
이상훈 그렇게 만든 것조차도 능력이다. 하다못해 티셔츠도 명함도 그냥 근홍이가 검은 색 하얀 바탕의 AI 기술로 만든 거다.
박근홍 밴드 생활 30년 하다보면 보컬이 하는 역할이라는 게 악기 연주를 안 하는 입장에서 잡일을 해야하다보니 잘은 못해도 적당히 할 수는 있다 이런 것들이라도 생긴다. 그게 다행히도 우리 안에서 불평이 없었고 마음 편히 작업하였다. 앨범은 결국 내면 되는 건데 본질을 못 보면 계속 집착하게 돼서, 본질에 충실했다.
앨범 트랙별로 질문해 보려 한다. ‘재앙(Disaster)’은 중박 BPM으로 리프나 리듬이 딱딱 떨어지는 구간이 청음 포인트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곡의 노랫말이 사회, 정치적인 메시지와도 연관이 깊어 보인다. 혹 시국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일지.
박근홍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가사가 큰 의미는 없다. 마침 시국이 이러니까 그걸 좀 담아보면 사람들이 더 듣는데 매력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해서 넣었다. 그러다보니 실마리가 풀리게 된 거고, 그 정도다. 거창한 의미나 그런 건 없다. 10년 전 정도만 해도 정치를 잘 안다 생각했는데 살고 보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더라. 쓸데없는 얘기들은 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갔다.
이상훈 트랙별로 전개가 있지 않은가. 근홍이는 가사를 입에 맞는 거, 이를테면 “이랬습니까와 ”이랬습니다“라고 할 때 ‘까’가 맞는 사람이 있고 ‘다’가 맞는 사람이 있고 어휘별로 맞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노래를 하다 보니 의미는 마음속에 있는 거지만 입에 맞는 걸 쓴다. 내용이라고 친다면 우리 나이 또래에 보는 게 뉴스 보면 그런 분위기가 나오고 그런 부분에서 비판을 직접 시도한다기보다 내가 느끼는 걸 몸 속에서 나오게 하는 거다.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연계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봐줄 수도 있는 거고. 우리 나이 또래에 나올 수 있는 생각들을 담아낸 거다.
박근홍 사실 작사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물론 실마리가 나오기 전까진 좀 소요되겠지만 딱 아 이거다 하는 순간 귀찮아서라도 빨리 작사를 끝낸다. 만들 땐 별 의미 없는데 계속 공연을 하면서 그때 나름의 의미가 덧붙여지는 것 같다. 나중에서야 보인다. 언더독은 신인밴드라 많은 분이 아직 듣지 않았지만 듣는 분의 해석이 덧입혀지면서 노래 가사에 의미가 생기는 거지, 처음엔 별 거 아니다.
‘재앙’과 마찬가지로 ‘광신도(Fanatic)’ 역시 노랫말이 시사하는 바가 역시 커 보인다. 기타, 베이스 터치의 앙상블과 중간의 릭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이 곡은 광신이 깃든 인간성 자체를 꼬집은 걸로 느껴지는데 그래도 가사를 쓰며 영향 받은 부분이 있다면.
이상훈 나는 릭이나 스케일 이런 건 전혀 모른다. 그냥 느낌대로, 테크닉이 전혀 없는 기타라 그 필로 간다. 속주인데 안 들키려고 와우 페달을 좀 밟고 그렇게 친다.
박근홍 좀 놀랐던 것이 상훈이 형이 똑같은 걸 연습을 엄청 많이 한다. 이렇게 같은 걸 많이 치는 사람은 내가 아는 기타리스트 중엔 상훈이 형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렉을 쳐도 통기타를 쳐도 댐핑이나 세기가 똑같이 나온다. 그것만은 확실히 보장 가능하다. 역시 가사에 깊은 뜻은 없고 할렐루야를 외칠 수 없으니 쓴 거다. 처음 ‘재앙’으로 시작하여 작년 12월 3일이 있으니까 거기 맞추자 하여 간 거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썼다기보다는, 만화가들이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자기 마음대로 캐릭터가 움직인다 하듯 완성된 거다.
이상훈 ‘재앙’이 있으면 ‘광신도’가 있고 이것들은 결국은 ‘썩은 나무’겠구나 싶었다.
박근홍 ‘썩은 나무’가 ‘광신도’를 만들었다고 봐도 되겠다.
이상훈 그런데 이걸 1-2-3, 2-3-1, 3-2-1로 바꿔도 그 의미는 연계가 된다.
‘썩은 나무(Touchwood)’까지 듣고 보면 이 앨범이 비록 EP지만 의미적으로 연결되는 짜임새를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얼터너티브와 프로그레시브가 함께 녹아 있는 사운드도 유기적이고. 트랙들의 메시지 구성이란 측면에 있어서 ‘썩은 나무’를 타이틀로 선정한 까닭이 궁금하다.
이상훈 우리 ‘썩은 나무’가 타이틀이었어(단체 웃음)? 내 생각엔 그걸 우리가 연결시키자고 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연결이 되네 싶었던 거다. 아까 말하였듯 우리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거기에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나올 수 있는 게 이런 것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했던 거다. 하다 보니 이런 게 나온 것 같다. 처음에도 이 앨범 내고서 공연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하다 보니 저절로 곡에 대한 의식이 차츰 생겼달까.
박근홍 곡 제목이 다 영어인데, 어쩌다 보니 이걸 다 영어로는 안 부르고 한글 제목으로 부르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청자들이 노래를 좀 더 잘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다시 말해 스토리 라인이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만들어졌다.
이상훈 내가 영어를 잘 모르다 보니 곡과 관련하여 또 물어본 게 많다.
박근홍 원래 한글 제목을 쓰면 되는데 유통사에 넘길 때 해외 유통 사이트에서 해외에 쓸 영어 이름을 함께 써 달라고 한다. 따로 쓰기 귀찮아서 제목을 통일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얼터너티브나 그런지 밴드가 프로그레시브록 같은 박자나 튜닝, 진행 면에 있어 말하였던 부분도 있다. 그리고 내가 밴드 왓을 좋아했던 게 한국의 사운드가든(Soundgarden) 같은 리프 메이킹이나 연주가 탄탄하였던 부분이다. 그래서 언더독에 합류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썩은 나무’는 내가 생각하기엔 멜로디가 제일 좋아서 타이틀로 선정하였다. 공연을 하다 보니 스트레이트한 ‘광신도’가 좀 관객들에게는 어필점도 있는 거 같았다.
‘Guitar’는 어떤 수식 없이 담백하다. 어찌 보면 작품 소개에 쓰여 있는 앨범의 화두인 ‘초심’과 걸맞는 ‘후회 없는 음악’이다. 이상훈이 기타를 처음 잡은 때부터 느낀 소회랄지 혹은 정현규나 장민규, 박근홍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음악 생활에 입문하고 아티스트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현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을 시작했다. 집도 나오면서, 그때 분위기는 음악을 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지하실 생활을 하였다. 거기서 숙식하면서 3,000원 정도 있을 때 배불리 라면을 먹을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집을 나와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대학교 때도 독립해서 살고 싶어 자취를 하였었는데 그런 와중에 아프리카라는 밴드를 1998년에 결성하게 되고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느끼는 게 많다. 클럽에서 활동했던 팀이 아니고 행사를 대학교에서 지역 축제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열 일곱, 여덟번 하였던 팀이다. 심지어는 납골당 기념식이란 명목으로 공동묘지까지 가서 로큰롤을 했다. 그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해야 된다는 것뿐이었다. 알다시피 배우자가 보컬 윤성인데, 2010년 정도에 윤성이 우울증이 왔었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로봇 같은 느낌으로 음악을 하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뭘 해야 될지에 대한 의문이 든거다. 매니저가 친형이었는데 의지한 부분이 있었다. 내 얘기를 100%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매니저 역할과 리더 역할을 겸하며 생각이 달라진 거다. 무언가 해보려고 중국, 일본까지 가보며 모든 걸 다 해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다 접어야 되나 하는 상황에 윤성이 ‘싱어게인 2’에서 탑3까지 올라가고 난 뒤부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프리카가 30년 간 버텨왔는데 이제는 윤성과 나만 있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편으로는 언더독하면서 어떤 기분이 드냐면 밴드 음악을 다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컬은 박근홍이, 기타는 이상훈이, 베이스는 장민규가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그게 팀이라는 생각인 거다. 만약에 누군가 탈퇴하였을 때 이 자리는 감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언더독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앞으로 30년 더 이어나갈 것이고, 버텨나갈 것이며 언더독은 재탄생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하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으로 하는 거다.
장민규 ‘Guitar’라는 곡을 들을 때 나는 개인적으로 그 기타가 단순히 기타가 아니고 그 기타가 가진 게 나고, 내가 곧 기타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지하실에서 연습하던 그 모습의 나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무언가 밴드라는 자체가 내가 연주를 하고 있지만 다른 데서 파트를 연주한다 했을 때 세션을 할 적에는 주변에서 메트로놈부터 노트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틀리면 안 되고 혼자 싸우듯 연주하는 거다. 그런데 밴드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내가 내 스스로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즉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느낌이다. 파트만 채우는 게 아니라 모든 트랙을 채우는 거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마음, 지하실에 있던 내 마음과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이 곡을 좋아하는 이유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박근홍 기타 솔로가 원래 길게 이어지는데, 그 기타 솔로를 잘랐다.
장민규 (웃음)너무 길게 가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줄일까봐. 짧아졌음에 대한 빈 공간과 여백, 여분이 더 생각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박근홍 그 공백을 마치 쿠르트 바일(Kurt Weill, 독일 태생의 미국 현대 음악 작곡가)처럼 여러분들의 소리로 채워주면 된다.
이상훈 다 동의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줬다. 나는 사실 그런지, 사이키델릭 장르를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네 명이서 이 몸과 마음속에서 나오는 음악을 한 1년 지나서 또 두, 세곡 만들어서 앨범을 내든지 음원을 내든지 하면서 그냥 정말 내가 기타를 메고 서 있을 수 있는 시간까지 지금과 같이 가고 싶은 게, 가야 되는 게 내 임무고 생각이다. 다른 건 없다. 그게 제일 크다.
무대의 커버 레퍼토리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펄 잼(Pearl Jam), 펑카델릭(Funkadelic), 김현식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근본적이다. 추후 무대에서 또 커버해보고 싶은 레퍼토리가 있는가.
박근홍 하다 보니 멋있게 할 수 있는 몇 곡이 추려진다. 그래서 애매한 것들은 정리를 좀 하고 메들리를 만들 수도 있고, 우리가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면서 우리 곡도 겸하여 준비하려 하고 있다.
이상훈 맨 처음은 커버 곡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때도 그냥 각자 하고 싶은 거 한 두 세곡씩 톡방에 올려보아라 하여 그걸로 다 연주한 건데, 하다 보니 그 곡을 다 할 수 없는 것도 있어서 자연스레 커버가 추려졌다. 그 곡이 우리에게 안 맞다 하여 지워 버린 게 아니다. 3~40분 정도의 공연 시간을 고려하여 추리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 곡이 생기며 더 추려졌다. 우리의 창작곡을 하면서 상대의 반응이랄지 우리의 느낌이 이거구나 생각하며 다음엔 또 이걸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박근홍 시작 면에서 우린 나름 자유로웠던 것 같다. 여러 커버를 하다 보니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노래들이 서로 다 속칭 ‘우라까이’구나 했다. 제일 처음 커버했던 게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였는데 그게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의 ‘Cochise’랑 완전히 똑같은 노래더라. 그리고 펑카델릭 하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싶었더니 그게 메탈리카(Metallica)의 ‘Nothing Else Matter’였고. 그래서 이 선배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활동하고 있구나 했다. 그런 면에서 AI가 훌륭하다는 걸 느꼈다. AI 없을 때는 저작권을 갖고 싸우기도 하였는데 이걸 쓰니까 저작권 얘길 안 하지 않는가. 인류는 진보하고 있다. 언더독에서 언더 휴먼으로(웃음). 근데 사실 개가 훌륭한 개체 아닌가? 어쨌든 개같이 착하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겠다.
현재 활력 있는 공연 일정들로 클럽 신을 주름잡고 있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신을 움직이는 언더독들로서 지금의 활동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
이상훈 최고다. 그러니까 연습을 해도 언더독에 있다 보니 이 곡들이 공연을 위하고 나를 위한 연습이다. 마치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날 과자를 싸며 연양갱을 갖고 가냐 마냐를 두고 준비하는 그 과정들과 같다. 악기를 치는 방식을 공연 전날까지 고민하고 당일날 장비 챙기는 등등 이런 과정들을 겪는 재미로 팀에 있다.
정현규 아까 이야기했듯 다시 시작하는 기분, 초심의 기분이다.
이상훈 현규가 대구에 있는데 물론 아무리 이야기가 된 거라지만 이렇게 먼 거리를 오가며 하는 것도 대단한 거다. 거기서 장비를 챙기고 오고 가는 길이 보통 일이 아닌데 아무런 군말 없이 하고 있다는 게 너무 고맙다.
박근홍 현규 형은 언더독의 관식(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양관식), ‘정관식’이다(단체 웃음).
정현규 내가 만일 서울에 있으면 이렇게 안 해도 되지 않나.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하는 거라 하는 거다. 그런 마음을 먹어야지 안 그러면 못 한다.
향후 활동 혹은 앨범 계획이 있을지.
박근홍 정해진 건 당연히 없다. 뭐든 빨리 했으면 좋겠다.
이상훈 지난 1월에 녹음해서 3월에 앨범을 냈는데, 1월이 한산하다. 공연 잡으면 잡을 수도 있지만 이 곡을 갖고 3월부터 12월까지 공연을 하는데 벌써 내 생각에는 3곡이 또 있다. 만들 수 있는 곡이 3곡 정도가 있는데, 지금 거의 20초 정도 만든 곡인데 이건 합주하면 금방 나온다. 우리의 마음을 모으면 완성할 수 있는 곡들이다. 다음 자켓은 고양이로 하든 쥐로 하든 다른 동물로 해서라도 3월 전에 앨범을 내고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지 않을까.
박근홍 개인적으로 더 빨리 하고 싶긴 하다. 계획 있는 밴드가 솔직히 많이 없지 않나? 아무튼 열심히 하려 한다.
정현규 언더독은 생각만 있는 밴드가 아니고 행동하는 밴드다. 계획만 잡다 끝나는 밴드도 많은데 해야 된다면 하는 밴드.
박근홍 원래 개나 고양이들이 현재의 시간만 산다 그러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언더독 역시 현재를 산다.
<파라노이드> 독자와 록 마니아들에게 메시지 부탁한다.
이상훈 물론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건들 때문에 많이 찾아오지 못하는 건 알고 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리도 계속 연주하고 다니는 거다. 그런 마음조차 못 느낀다면 우리는 허공에 대고 연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클럽에서는 분산돼있는 마음을 느낀다. 어쨌든 그래서 연주를 하는 거니까 공연장 오셔서 우리를 봐주시고 앨범 있으면 한 장 사주시고 그냥 공연 보고 가도 된다. 다른 거 없다. 그것이 마니아의 숙명 같은 임무다. 밴드의 숙명은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듯이. 그 숙명이 동반되길 바란다.
박근홍 인터뷰하는 날짜 기준으로 전전날에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내한 공연이 있었다. 많은 분이 가셨고 우리 연배의 형님, 누님들이 어린 친구도 많이 왔다더라. 가끔 그런 착각을 한다. 한국에서 록이 마이너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록 팬이 제일 많다. 우리가 건즈 앤 로지스 같이 적절한 이벤트를 못 만들어서 못 나온 것뿐이다. 여러분도 마이너라 생각지 말고 언더독이 적절한 이벤트를 만들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할 테니 혹여라도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한 번 발걸음 해 주었으면 좋겠다.
※ 한정된 지면으로 파라노이드 통권 40호 지면에 실리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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