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은 펄프(Pulp)와 벡(Beck)을 포함하여 초유의 내한 소식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있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복귀 무대가 그러했다. 세기말 1999년 결성하여 이제는 한국 인디의 별자리를 이룬 지 오래인 그들이다. 밴드의 시대 한복판에 벌어진 축제로 돌아온 3호선 버터플라이는 곧이어 [환희보라바깥]이란 신보까지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성기완과 보컬리스트 남상아, 베이시스트 김남윤이 오래간만에 함께 빚은 전자음과 슈게이징의 빛깔이 형형하다. 그 빛을 이룬 바탕과 이야기가 궁금하여 3인조로 돌아온 3호선 버터플라이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했다.
인터뷰 질문 작성 김성환, 허희필, 정리 허희필
지난 8월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통해 밴드로서는 6년 만에 복귀했다. 펜타포트 무대가 복귀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었는데, 주최 측에서 권유가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복귀 무대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관객들 앞에서 오랜만에 공연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궁금하다.
김남윤 몇 년 전부터 펜타포트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제안이 있었지만, 상아 누나가 한국에 없기도 하고 저희 각자가 생업에 바빠 쉽게 수락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작년에 펜타포트에서 다시 한번 권유가 있었고, 기완 형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본격적인 재결성이 추진됐다.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복귀 준비를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곡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하다 보니 예전 생각도 많이 났다. 처음에는 쉽게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펜타포트를 기점으로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하고 싶었지만, 공연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준비가 충분치 않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상아 누나가 한국에 들어온 게 공연 한 달 전쯤이었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수많은 관객의 눈빛이 보였고,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첫 곡으로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을 시작했는데, 상아 누나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관객의 함성이 들려왔다. “아, 이 시간을 위해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준비해 왔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연을 끝내고, 다음 날 SNS에 올라온 3호선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면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성기완 글쎄, 때가 돼서 한 거 아닐까? 우린 계속 우리인데 너무 오래 헤어져 있었던 거다. 물론 권유는 있었다. 펜타포트 주최 측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이제는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어오는 분이 있었다. 그분께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도 때가 된 걸 미처 몰랐던 건가 보다. 막상 모이고 보니 너무 당연했다. 우린 이렇게 서로의 소리를 듣고, 그걸 기록해 나가고, 관객들과 공유해 온 그런 사람들이었던 거다. 준비를 열심히 했다. 마음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손가락은 아직 아니었다. 기타에서 내 손가락이 짚는 자리가 어디였더라? 무슨 코드였더라? 처음에는 약간 더듬더듬 찾아 나갔다. 그런데 신기하게 어떤 곡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건반사처럼 리듬에 그리고 멜로디에 나의 몸에 반응하는 거다. 상아랑 남윤이랑 “이게 되네?”하고 서로 신기해했다(웃음). 그렇게 되면서 “그래, 이렇게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몸을 사람들에게 던지자” 싶었다.
남상아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몇 년을 생활하다가 이번에 다시 팀 활동을 위해 한국에 돌아온 셈이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함께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느꼈던 멤버 각자의 감정과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남상아 지난 몇 년간 음악 신에서 꽤 멀리 떨어져서 오래 있었다. 그리웠던 맘을 꽁꽁 뭉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김남윤 다시 해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이 컸다. 예전에 활동할 때 좋은 점도 많았지만, 힘든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또 반복된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이제는 더 이상 젊은 나이도 아닌데, 예전만큼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예전의 팬들이 다시 돌아와 줄까, 아니면 과거의 추억은 그 자체로 남겨두는 게 더 의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또, 다시 무대에 섰을 때 발전 없이 같은 자리를 답습하고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컸다. 어쩌면 역사 속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지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너무 부정적인가?(웃음)
성기완 나 같은 경우도 잠시 떠나 있다가 무려 9년 만에 돌아오지 않았나. “한 번 복귀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기왕 복귀한 다음에는 무조건 멋지게 하는 거야”라는 다짐 같은 건 있었다. 새로운 EP를 발매한 것도 컸다. 새 노래를 모아 놓고 나니, 꽤 괜찮은 거다(웃음).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우리구나, 괜찮다, 세월이 지나도 3호선은 3호선, 이렇게 생각했다.
복귀와 함께 8년 만에 새 EP [환희보라바깥]이 발매되었다. 앨범의 제목은 어떤 계기로, 어떤 의미를 담아 짓게 된 것인가.
성기완 앨범 제목으로 조금 고민했는데, 새 앨범에 ‘표선 무지개’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 가사 중에 ‘환희 울트라바이올렛’ 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맞다, 이제 연륜이 꽤 붙은 우리 같은 뮤지션이 추구할 것은 보라 바깥의 감각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궁금해서 찾아봤다. 나비가 보라 바깥 다시 말에 자외선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은 자외선을 못 보잖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나비는 자외선으로 서로를 알아본단다. 그리고 날개가 반사하는 빛으로 자외선을 뿜어낸다고 한다. 감각의 경계 너머에 있는 깊은 올림? 뭔가 우리의 음악은 그쪽을 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앨범 수록곡은 재결합 무대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준비된 것인가. 재결합 공연을 넘어서 이렇게 완성된 음반까지 함께 준비하면서 힘든 상황은 없었는지, 진행 과정의 비하인드를 듣고 싶다.
남상아 사실 많은 부분에서 의견 충돌과 다툼이 있었다. 기완 오빠는 여전히 기완 오빠였고 남윤이는 또 여전히 남윤이었지만 각자가 갖고 있던 특성과 색깔이 더 진해진 느낌이었다. 나도 아마 그랬을 거다. 시간이 흐른 만큼 원하는 그림이 확고해진 거다. 그렇게 서로 양보도 하고 고집도 부리고 질문하고 이해하고 밀고 당기다 보니 완성된 음반은 어느새 세 사람의 색이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보라바깥 색이 되었더라. 피 터지는 전투 후 5곡의 환희!
김남윤 펜타포트 공연이 확정되고 나서, 단순히 예전 노래들만으로 공연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한 발짝 더 나아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예전 앨범 작업 때보다 더 큰 부담이 느껴졌다. 최소한 체면은 구기면 안 되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앨범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크고 작은 결정들을 끊임없이 내려야 했고,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도 함께 의논하다 보니 의견이 자주 엇갈렸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정체되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고, 수많은 조율 과정을 거치는 일이 힘들었다. 하지만 완성된 음반을 듣고 나니, 힘든 순간들도 결국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성기완 처음에는 “우리가 공연할 수 있을까, 이전에 과연 우리가 모일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여차저차해서 모이고 보니 이제는 공연 준비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공연 몇 번으로, 옛날 우리 노래들로 오랜만의 이 만남을 채우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모이자마자 “오랜만에 만나는데 우리 새 앨범도 하나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의견이 나왔고, 모두 동의했다. 미리 준비된 곡도 있었고 새로 만든 것도 있다. 나 역시 가지고 있던 노래 중에 3호선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내놨다. 그중에 어떤 건 멤버들이 맘에 들어 했다. 앨범을 만들다 보니 다시 알게 됐다. 우리는 정해진 틀이나 마련된 계획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소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미지의 사운드를 실험에 나가는 사람들일 것 같다. 이번 앨범도 그 과정에서 중요한 계단 하나를 놓은 것 같아서 마음에 든다. 앨범 만드는 과정에서의 의견 충돌이나 방향 조정은 필연적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걸 피한 적이 없다. 그 자체가 모험의 일부이다. 부딪힐 때는 힘들지만 막상 결론이 나오고 나면 그 소용돌이가 아련한 추억이 되는 거다(웃음).
이번 EP 수록곡을 들으면서 과거 정규작에서 느꼈던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요소가 특히 강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음반을 관통하는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김남윤 이번 앨범에서 아쉬운 점은 신나거나 강렬한 음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런 트랙도 만들려고 했지만, 시간상으로 여유가 부족했던 것 같다. 질문처럼 결과적으로 몽환적이고 감성적인 노래들만 남게 되었다. 다음번에 새 노래를 만들게 된다면 에너지 넘치는 빡센 곡도 만들어 보려 한다. 이번 음반을 관통하는 정서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잔향! 잔향처럼 긴 여운이 남는 음악이 되고 싶다.
성기완 글쎄, 보라 바깥의 정서?(웃음) 과거와 미래를 통합하는 현재? 그런 시간적 조건 속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했다. 또 하나는 거리낌 없는 믹스? 뭐 그런 것도 있었다. ‘20년 전 오늘’이라는 노래 들어보았나. 이 노래가 발라드지만 중간에 3박자도 들어있고 바로크적인 요소도 있고 뭔가 프로그레시브록적인 부분도 있고 한국 발라드 같은 면도 물론 있고, 다양한 시간대, 여러 스타일의 레이어가 공존하고 있다. ‘표선 무지개’에서는 과감하게 드럼 앤 베이스 스타일의 비트를 결합했고, 그건 이 노래의 힙합적인 출발 지점과 맞물렸다. 심지어 프리 재즈 색소폰도 있다(웃음). 공연 때 상아를 옆에서 보면서도 느끼는 건데, 우리는 나이 먹으면서 점점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어지는 거 같다. 계속 그렇게 가고 싶다(웃음).
이번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에 대해 “소리라는 청각적 대상을 통해 음악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구현해 낸다”라는 표현을 읽었다. 그만큼 연주에서 소리의 변주를 많이 활용할 텐데, 작업을 하며 사운드 이펙트와 악기 본연의 소리 배합비는 어떻게 맞추면서 곡을 꾸려나갔는지 궁금하다.
김남윤 가장 기본이 되는 곡의 멜로디와 코드 진행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상아 누나가 노래를 덧입혀 보면, 그 곡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목소리를 중심으로 어울리는 여러 사운드와 이펙팅을 무질서하게 적용한다. 연주 역시 목소리의 분위기에 맞춰 여러 번 재편곡한다. 여러 요소를, 탑을 쌓듯 하나하나 쌓아가다가, 다시 무너뜨리고 다시 정리하면서 쌓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필요한 사운드만 남고, 필요 없는 사운드는 자연스럽게 버려진다. 곡을 이것저것 가득 채울 수도 있고, 담백하게 할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은 없다.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최종 선택된 사운드가 내일이 되면 또 맘이 바뀌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마감 날짜가 다가온다. 그때가 오면 아쉬워도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게 곡을 완성해 갔다.
성기완 그 부분은 특히 김남윤의 역할이 컸는데, 소리의 화폭에 다양한 색깔들을 칠하는 일이 녹음과 믹싱 과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특유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 가는 것이 3호선 버터플라이의 또 다른 특징인 거 같다. 노래가 중심이 되지만 결국 우리가 들려주는 것은 더 넓게 보면 소리 그 자체다. 노래로만 듣지 않고 소리의 다가옴으로 경험하는 것, 그것이 3호선 버터플라이를 제대로 듣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지 생각한다.
표지 디자인이 추상회화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킨다.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었고, 커버를 통해 상징, 또는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김남윤 이재민 디자이너께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과 취향을 설명했다. 사이키델릭한 요소가 들어가길 바랐고, 물과 기름이 섞였을 때 나타나는 물성의 추상적인 모습이 어떨까도 이야기했다. 몇 가지 디자인을 보여주었는데, 그중에서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앨범 제목처럼 가시광선을 벗어난 다른 세상의 빛처럼 느껴졌다. 어찌 보면 현미경으로 확대해 본 세포 같기도 하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성운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기완 앨범 표지 때문에 우여곡절이 조금 있었는데, 다양한 시안을 검토하다가, 결국 형상을 알 수 없는, 넓은 사운드의 안개 같은 존재감? 이번 앨범을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이 표지가 채택됐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이재민 디자이너의 경험과 감각이 잘 녹아 있는 디자인인 거 같다. 추상적인, 뭔가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려 남겨진, 마치 용암의 자취 같은 느낌이랄까. 표지의 그런 시각적 느낌이 마음에 든다.
선공개 곡인 ‘너의 속삭임’을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3호선 버터플라이 방식으로 표현한 시티 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여유롭고 그루브가 강한 곡이란 느낌이었다는 의미다. 그 인상에 특히 고경천의 화려한 신시사이저 솔로 세션이 돋보이는데, 이런 방식의 편곡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김남윤 5월쯤에 TGC 캠핑 공연 섭외가 왔다. CHS나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같은 팀의 곡이 바닷가 앞 야영장에서 나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바닷가 앞에서 우리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가볍게 춤추면서 여유를 즐기는 걸 상상했다. 흥겹지만 마냥 신나지 않고, 여유 있는 그루브가 넘실대는 노래. 질문의 곡에 대한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처음 데모를 만들 때는 옆에 기타가 없어서 적당한 신스를 찾아 첫 인트로 멜로디를 만들었다. 나중에 기타로 교체하고 멜로디도 바꿔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그 멜로디가 너무 강하게 머리에 남아 어떤 사운드로도 대체할 수 없게 되었다. 중간에 솔로도 내가 어설프게 연주한 뒤, 키보디스트 고경천을 불러 좀 더 프로페셔널한 연주를 완성했다.
타이틀로 선택된 곡이 ‘20년 전 오늘’이다. 중반부의 플루트 솔로를 듣다 보면 3호선 버터플라이 방식의 아트록 발라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연인에 대한 사랑을 넘어선 믿음을 담은 가사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성기완 아트록 발라드? 마음에 드는 장르명이다(웃음). 뭔가 그런 옛날 영국 록의 느낌도 그리워했던 것 같다. 가사는 사실 내가 거의 쓰긴 했는데, 우리의 가사가 감성적이긴 해도 실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할까. 일종의 음악적 박제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 나이 때쯤 되면 20년 전을 돌아보면 아스라한 사랑의 추억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장면들을 회상할 때는 과거와 현재를 0.1초 만에 오가게 된다. 이 노래는 일종의 타임머신인 거 같다. 과거와 현재가 통합되고, “이제 그만 갈까?” 싶을 때 미래로 가는 기분, 혹시 알까 모르겠다. 이 노래에는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대들이 혼재해 있다. 그 갈래를 잘 구분하면서 들어보는 것도 이 노래를 입체적으로 듣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앨범에서 가장 독특한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던 곡은 단연 ‘표선 무지개’였던 것 같다. 무지개의 일곱 색, 백 가지 방식(hundred ways) 등 색과 숫자를 상징적 기호처럼 가사에 넣었다. 이 곡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메시지, 그리고 곡의 중반부 이후 드럼 앤 베이스 사운드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성기완 ‘표선 무지개’의 가사도 사실 내가 많이 적긴 했는데, 무지개의 빨주노초파남보가 있지 않은가. 그 일곱 색깔을 하나씩 소환하면서 느끼는 환상적인 감각을 그 색깔들에 덧붙인 거다. 프랑스에 랭보라는 시인이 있지 않나. 이 시인이 알파벳 모음들에 색깔을 랜덤하게 붙이면서 현란한 감각적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영향도 없지 않다. 무지개 색깔과 매칭되는 환상적 상상력이 뛰어다니는 걸 그대로 놔두면서 느낀 그대로, 순간적으로 받아 적은 거다. 그렇게 하면 딱 일곱 개인 무지개의 색깔을 환상적으로 감각하는 동안 서로의 색깔들이 조합되고, 심지어 거기에 비트와 멜로디 그리고 소리풍경이 가미되면서 그 색깔들은 백배로 확장된다. 감각의 확장이랄까. 그래서 ‘레인보우 × 100 days’라는 가사가 나오게 되는 거다. 음악은 늘 시각적 감각을 확장해 주는 것 같다. 아무튼 흥미롭게 봐주어서 감사하다. 드럼 앤 베이스는, 사실 내가 클럽에서 디제잉 할 때는 주로 드럼 앤 베이스 장르를 튼다. 어렸을 때도 많이 들었고, 흑인음악에서 출발한 독특한 장르이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비트를 자리에 꽂는 노동자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있다. 우리의 느릿한 발라드 박자를 두 배 빠르게 하면 저절로 드럼 앤 베이스가 돼서 언제든지 드럼 앤 베이스로 넘어갈 수는 있는데, 이 노래가 마침 힙합 비트여서 더 어울릴 거 같았다. 힙합과 드럼 앤 베이스는 톱니처럼 서로 맞물리니까. 노래 중간에 무지개의 환상적인 빛깔들을 프리즘으로 분산시키면서 소리의 영역도 함께 확정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때 드럼 앤 베이스 비트가 들어오도록 하자, 그게 딱 드럼 앤 베이스를 실험할 포인트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생각한 대로 밀고 간 것은 아니다. 그저 순간적인, 감각적인 선택들이었고 그 순간의 선택을 스스로 신뢰하면서 우리 안에서 밀고 나가는 거다. 그렇게 해야 우리만의 사운드가 나온다. 이것저것 눈치 보다가는 평범해진다. 중간에 나오는 프리 재즈 색소폰 솔로 같은 더욱 의외의 결합이 이루어졌을 때, 이 노래는 마음껏 뛰어다니는, 소리의 색깔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무지개 같은 동물이 되는 거다.
앨범을 들으면서 지난 2017년 성기완의 저서 <노래는 허공에 거는 덧없는 주문>도 떠올랐다. 이번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도 어떻게 들으면 한 편의 ‘주술’ 같았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은 마음 한구석에 불안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을 위무하는 듯한 주술이란 생각을 해왔는데, 8년 만에 돌아왔어도 그런 본질이 변한 거 같지는 않다. 불안과 혐오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또는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멤버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남상아 예술은 본질적으로는 그 어떤 무엇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음악은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함에 목 끝까지 차오른 답답함이 소리로 뱉어져 나오는 거랄까. 잘 표현된 솔직하고 거짓 없는 음악은 듣는 이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애정을 느끼게 한다. 창작자에게도 같은 느낌을 그들의 피드백에서 얻게 되는 거 같다. 하지만 잘 표현된 솔직하고 거짓 없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 보는 수밖에.
김남윤 불안과 혐오가 일상화된 시대에 음악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작은 저항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직접 바꾸진 못하지만,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아주 작은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바람을 통하게 한다. 누군가의 내면에서 고립감과 불안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음악의 의미는 충분한 것 같다.
성기완 그 책을 언급해 주다니 감격이다(웃음). 나는 음악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논다. 그 안에 풍덩 빠져 마음껏 멱감는 거, 그 헤엄치기 자체가 우리 노래들이고, 듣는 분들 역시 또 그 소리의 바다 안에 풍덩 뛰어들어 마음껏 미역감는다. 그때 과거의 일들, 이를테면 헤어짐의 아픔,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것들은 잠시나마 오히려 우리를 든든하게 구성하고 있는 삶의 빛나는 요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식으로 규정짓지 않고, ‘그리움이 없었으면 사랑의 아픔이 있겠니’, 이렇게 되묻는 거다. 어느 순간 아픔은 터널을 뚫어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은 다시 우리를 따스하게 하지 않나. 음악은 그런 역전을 가능하게 하는 전복이다.
펜타포트 무대에 서고, 새 앨범도 발표했다. 그래서 사실 더 궁금한 것은 이후의 3호선 버터플라이의 행보다. 2025년 남은 시간 동안의 활동 계획이나 새로운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남윤 올해 멜론 × MOAH 충무아트센터(10월 19일)에서의 공연이 올해 우리의 마지막 무대다. 그다음 공연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 당분간은 재결성 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상아 누나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니, 언제 다시 함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지(웃음). 올해의 짧은 활동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장면처럼 느껴진다. 낡은 터널을 지나 다른 세상을 잠시 경험하고, 다시 터널을 빠져나와 현실 속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랄까. 아직 활동이 끝난 건 아니지만 왠지 다음 달 상아 누나가 비행기를 타고 가면 그런 기분이 들 거 같다.
성기완 무엇보다 남상아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그러면 우리는 다시 포즈(pause)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도 삶의 한 장면이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만의 관계라 생각한다. 멀리 있지만 함께 있는 것. 그렇게 사는 분들도 많지 않겠나. 기러기 아빠는 많지만, 기러기 밴드는 우리가 처음 아닐까?(웃음) 이번에 3호선 버터플라이를 다시 하면서 “누구나 그렇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또 함께 있다, 그렇다면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시간만 존재하면 우리는 계속 한 밴드다, 열어 놓고, 느슨하게,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면서 가자” 이런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파라노이드> 독자와 긴 시간 3호선 버터플라이의 활동을 고대해 왔던 음악 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한다.
남상아 팬 분들께 진심으로 마음 깊이 감사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느낌이다. 자주 뵙지는 못하겠지만 꼭 다시 여러분께 부끄럽지 않을 노래를 들고 회우할 것을 약속드린다.
김남윤 전문 음악 매거진인 <파라노이드>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2025년은 우리에게 특별하고 뜻깊은 한 해였다. 비록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소중한 순간이었고, 언젠가 파라노이드를 통해 다시 여러분과 마주할 날을 마음속 깊이 기대하고 있겠다.
성기완 오랜만에 다시 공연을 하며, 무대에서 관객들과 눈을 많이 마주쳤다. 오래전부터 오시던 분들, 젊은 관객들도 많고, 다들 행복한 표정이어서 나도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 음악을 이토록 소중하게 여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한 번 한 번의 공연이, 함께 한 매 순간이 진짜 감격스러웠다. 점점 노년으로 향해가는 우리, ‘스물아홉 문득’의 가사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난 거의 예순 살’이 되는 이 상황, 나는 실제로 2년 후에 그렇게 된다(웃음). 그 가사가 현실이 될지 몰랐다.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나의 환갑 잔치 때 3호선 버터플라이가 모여서, 꼭 이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 싶다(웃음). 아무튼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어떤 파도가 몰려오면 우리는 거기 휩쓸려 함께 풍덩 빠져 음악을 할 거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가까운 미래일지, 더 시간이 걸릴지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손을 잡았으니 우리가 마주 잡고 있는 손은 원을 그리게 된다. 갑자기, 내가 좋아하는 황유원 시인의 어느 시구가 오른다. ‘아무리 큰 원을 그려도 그 원은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이 멋진 시구로 전하고 싶은 말의 끝을 대신하겠다. 감사하다.
※ 한정된 지면으로 파라노이드 통권 41호 지면에 실리지 못한 인터뷰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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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D OF POISON, 좀 더 한국적인 얼터너티브록, ‘조서너티브(Josunative)’를 개척해 가는 베테랑들의 결합체 (0) | 2025.12.12 |
| CRACKBERRY, “재밌는 인디 밴드가 되고 싶다. 그게 진짜 인디 아니겠나.” (0) | 2025.11.02 |
| JELUSICK, “키우고 있는 꿈을 지속적으로 가꾸고 그걸 이뤄가는 것이다.” (0) | 2025.08.28 |
| 러브칩스 페스티벌 기획자 이용원, “음악으로 한국과 일본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러브칩스 페스티벌의 가장 큰 목표이자 메시지다.” (0) | 2025.08.20 |